- 평점
- -
- 감독
- 토드 필립스
- 출연
- 호아킨 피닉스, 레이디 가가, 재지 비츠
조커 신드롬이라 불릴만큼 엄청난 인기를 보여준 <조커>의 시퀄 ,<조커:폴리 아 되>를 보고 왔습니다.
사전에 공개된 정보로는 뮤지컬적 요소가 추가 될 것이고 레이디 가가가 할리퀸으로 등장하게 되며 조커와 함께 세상을 뒤집을 결심을 한다고 하죠. 그것 때문에 DCEU가 리부트 되는 와중에 <더 배트맨>과 함께 DC엘스가 리부트 중인 DCU보다 더 빛나게 될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관람한 것을 후회하느냐 고 질문하신다면 저는 "오히려 영화관이라 좋았어요."라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인터넷에 "어둠의 라라랜드"라고 이 영화를 평가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비중, 그리고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음악을 감상하기에 영화관 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요.
그럼 이 영화 내가 봐도 되겠느냐? 질문하신다면... 저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조커>의 그 딥 다크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 <퍼스트 맨>이나 <오펜하이머>와 같은 전기 영화를 인상깊게 봤다.
- 뮤지컬 영화에 대한 불호가 없는 편이다.
절대 보지 마라 할만 한 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존 히어로 무비의 문법을 좋아한다.
- <조커>의 후속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세계관의 확장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다.
- 뮤지컬 영화를 불호한다.
저의 한 줄평: 아서 플렉여야만 했던 조커, 조커여야만 했던 양 극단, 끝없이 펼쳐지는 노래는 현실감각을 상실한 그들의 것이었고 노래가 멈추자 그도 멈추었다.
이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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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뮤지컬일까?
저는 이 영화에서 노래는 "현실적"의 반대를 상징한 요소 사용되었다 생각합니다. 이전 <조커>에서는 형편없는 어쩌면 잔인한 유머와 농담으로 조커를 관객으로부터, 그리고 작중 수많은 제도권의 무언가로부터 분리했습니다. 그 역할을 노래가 이어받았습니다. 전작에서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긴 만큼 같은 도구로는 관객과의 감정적 절단을 시도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를 가장 지지하는 할리 퀸과의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그 로맨스에 관객이 감정적으로 딸려드러가서는 안되는 것이었죠. 철저하게 관객을 관찰자의 시점으로만 두어야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뚜렸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로맨스를 다루면서 감정을 빼버린다는 건 아이러니한 걸 넘어서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때문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노래라는 요소를 "조커를 따르는 세력"의 소유로 만들어 그들의 감정적 모습을 영화에 담으면서도 대사가 끊기며 노래가 시작되는 그 시점에 관객과 극 중인물의 감정적 절단을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의 노래들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산을 만들겠다는 할리퀸의 노래, 성인들을 따르겠다는 죄수들의 노래 모두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하여 중반부 할리퀸과 조커의 몽상가적 야심을 보여주고 후반부 교도소에서 조커의 지지자가 되어가는 죄수들의 모습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성인"을 따르겠다는 그 노래가 조커가 이번 영화 속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잘 나타내는 요소일 것 입니다.
쟤들은 깊은 이야기, 진실은 관심없어 너두?
영화 초반부, 농담을 하지 않는 아서 플렉이 면도를 하는 동안 교도관 한 명이 농담을 합니다. 강아지도 장례미사를 해주느냐는 질문에 그건 동물병원에 가서 알아보라던 신부님이 동물병원에 이 정도들고가면 될까요?(얼마랬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라는 질문에 아 참 너희 강아지 카톨릭이었지? 라고 답한다는 전형적인 블랙 유머 였습니다. 이 영화는 이중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혐의는 아서 플렉이 뒤집어쓰던 루니툰 스타일의 만화의 제목도 그림자 소동이었고 (아마도?)앞서 가톨릭 강아지 농담도 그렇지만 조커를 둘러싼 고담 시민들의 시선 역시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겐 천인공노할 범죄자이지만 누군가에겐 타락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혁명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서 플렉이 어떤 사람인지 하다못해 조커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중요할 뿐이죠. 그를 사형시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라디오 방송 시청자 논객의 대사, 법원으로 부터의 탈주를 도왔지만 조커의 도착지를 묻지 않던 조커의 지지자가 그들의 속성을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지지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그들도 1편의 빌 머레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무엇보다 영화 후반부 할리퀸이 조커가 심어준 환상을 이야기한 그 부분이 조커의 가장 친밀한 지지자조차도 그 자체보다 그가 보여주는 환상, 그 상징성을 좋아했던 것이라는 통해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서 플렉이 사실은 여전히 혼자였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아서 플렉이 아서 플렉이길 원한 사람은 없습니다. 조커이거나 둘 다 이길 원했습니다. 겉모습에 감쳐져 있는 그림자의 모습을 알아봐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이 사회가 어떻게 한 개인을 소비하는 지를 DC의 가장 사이코패틱한 빌런을 통해 풀어내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양 극단으로 갈라지는 사회의 모습을 관찰하며 노래로 대표되는 그들의 환상을 목격하며 관객을 배심원단으로 만듭니다. 물론 조커를 판단하는 배심원은 아닙니다. 이 고담시민과 시스템에 대한 배심원이죠. 그러면서도 나 역시 양 극단의 누군가는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왜 죽여야만 했을까?
아서 플렉이 결국 교도소에서 한 사이코패스의 칼을 맞고 사망한 듯 연출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가 왜 아서 플렉을 죽인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면회를 가던 길이라는 것에서 자신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에 앙심을 품은 교도관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조커는 없다는 말로 환상을 앗아가버린 그에게 복수하는 행위일수도 있으며 그저 그가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서 플렉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결말은 너무나 비극적이면서도 상징적입니다. 그 누구도 아서 플렉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쓸쓸한 모습으로 열광하는 지지자와 함께 조커로서 서있던 1편의 결말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결말을 보면서 어쩌면 감독은 <조커>의 후속작을 만들어달라는 워너 브라더스가 빌 머레이 같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조커라는 캐릭터를 이용만 해먹는 빌 머레이 말이죠. 그래서 죽음으로 3편의 제작을 원천차단하고 더 배트맨 세계관과의 통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배트맨의 숙적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끝나는 영화이기에 기존 배트맨 영화의 팬들을 비롯한 대부분은 의아함과 더불어 황당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오히려 이런 결말이 마음에 듭니다. 노래가 멈추자 그도 멈춰버렸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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