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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그 이후 사극: 만들어지긴 할 수 있을까?

그라운드스톤 2024. 1. 3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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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제작 직전작의 동물학대 관련 이슈로 인한 걱정을 가지고시작하였으나 최고 시청률 10% 고지를 넘기면서 화제성 면에서 타 드라마들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중반부, "고려궐안전쟁"이라는 오명도 받았지만 이 정도면 순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논란도 범법행위나 부도덕한 일이 아니라 작품 진행과 관련한 원작자와 제작진의 갈등이기에 역으로 이 드라마가 받는 관심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고려거란전쟁>도 이제 서사의 2/3이 지나고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다음 정통 사극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합니다.
제가 오늘 드릴 얘기는
1.올라가는 창작의 난도
2.OTT라는 새로운 지대와 나비효과의 역습
3.나름대로의 대안
입니다.

올라가는 창작의 난도

고증과 창작의 균형에서

<고려거란전쟁>이 받은 호평과 혹평, 그 중심에는 모두 고증이 있었습니다. 흥화진 전투에서 비슷하게나마 보여준 당시 공성전의 고증, 애전전투에서 갑옷과 당시 냉병기들의 쓰임새에 대한 고증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목에 두르는 찰갑과 국궁의 파지법도 드라마의 고증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게 해주었죠. 한편, 이른바 "마통사고"는 고유명사로 대표되는 호족과 현종의 주권전쟁은 고증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이미 광종 대에 노비안검법과 숙청, 성종 대의 12목 지방관 파견과 10도 지방체제로 호족이 황실에 감히 대항하지 못했을 것인데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죠. 중앙권력의 지방흡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현종 대에 마치 개혁을 시작하는 묘사를 했고 실제역사에는 . "주현공거법"처럼 지방세력의 중앙진출을 돕는 당근도 함께 제시를 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 사례를 토대로 보면 사극이라는 장르, 특히 공영방송에서 제작되는 정통사극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고증과 창작의 난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흔해빠진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서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섞어나가는 "삼국지" 스토리, 지도자의 업적이나 사건에 왕실 내부의 암투나 권력투쟁이 촉매제가 되었다는 식의 "여인천하"식 스토리에 시청자들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이미 한 번 놀라봤기에

시청자들은 사극의 흔한 클리셰라고 지나가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와 다른 부분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퓨전사극이긴 하였으나 <철인왕후>,<조선구마사>가 만들어낸 생채기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으로 "문화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을 그 사건들로 깨닫고 묘사에 있어 신중해야한다는 입장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문화트렌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가 제작하는 최근의 퓨전사극들이 점점 중국 무협 스타일로 변모하는 걸보면 더더욱 그런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빵에서 밀가루를 뺄 수는 없잖은가...

그러나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창작을 빼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것이기에 역사의 기록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이야기만해도 실록이 존재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기록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여러 부분에서 역사기록에는 빈 구멍들이 존재합니다. 어떠어떠한 이유와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적 빅 이벤트를 만들게 된 것인지는 역사를 해석하는 분들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사극에서는 그 빈 구멍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매웁니다. 주인공에게 행동의 동기를 만들고 시청자들에게는 주인공을 이해하고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 사극에서 창작에 부여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MZ세대인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하사극인 <대조영>은 고증에 있어 많은 부분에 있어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창작된 서사가 주는 설득력이 시청자들을 작품에 흡인시키고 부족한 역사기록으로 인한 그 큰 구멍을 매웁니다.
<녹두꽃>은 어떠합니까? 주인공 모두가 창작된 인물이며 그들의 서사 역시 모두 창작된 것이지만 그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는지, 왜 전주에서 화약맺고 멈추었는지, 왜 다시 봉기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작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런 것입니다. 동기부여와 개연성 부여라는 1차적 목표, 그리고 감정과 긴장을 만드는 태생적 역할 그것을 수행해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증과 창작의 균형에서 작가와 제작진은 더 머리를 싸매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극이 만들어지는 데 다소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이유로 생각합니다.

OTT라는 새로운 지대와 나비효과의 역습

사극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한계로 PPL이 제한되기에 막대한 자본력이 필요한 정통사극은 더 제작되기 어려운 악순환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OTT라는 새로운 환경이 어쩌면 사극에 가나안이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려거란전쟁>은 넷플릭스를 비롯하여 글로벌 OTT들을 통해 방영되고 있고 국내순위이지만 스트리밍 1위를 기록한 적도 있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성공이 제작사들로 하여금 여전히 규모있는 정통사극을 소비하는 층이 있음을 알리고 투자를 유도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OTT로 인한 조금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OTT가 가져온 나비효과 1. 하늘 높이 올라가는 제작비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영상콘텐츠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 수요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더욱이 작년 하반기 끝난 할리우드 배우,작가 조합의 파업 때문에 콘텐츠 공급에 차질이 생긴 글로벌 OTT사들의 콘텐츠 제작소로 대한민국에 막대한 관심과 함께 천문학적인 투자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콘텐츠가 사랑받는 것은 분명 기뻐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비효과로 배우들로 대표되는 검증된 제작진의 개런티가 크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1억에서 10억 이상을 호가합니다. 경험있는 작가진과 감독, 촬영감독 등의 스태프들도 개런티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때문에 최근 방송가를 보면 여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침드라마","수목드라마"의 실종, "금요드라마 등 주 1회 방송 드라마의 출현"이 그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상제작과 역사고증 작업 등으로 애초에 많은 비용이 필요한 정통사극은 제작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죠.

OTT가 가져온 나비효과 2. 짧아지는 시청패턴

OTT 뿐만 아니라 틱톡 등의 숏폼 SNS가 만들어 낸 변화로 시청자들이 점점 긴 영상, 호흡이 긴 서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OTT 드라마는 <무빙>을 제외한다면 한 시즌에 10회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그 마저도 챕터 1/2로 분리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길이도 평균 약 50분 심하면 30분에 끝나는 에피소드들도 존재합니다.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정보와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시청패턴에 끊입없는 32부작 드라마는 30년 전 200부작 드라마 만큼이나 호흡이 길다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정통사극도 그 흐름에 맞춰서 회차 수를 줄이는 것이 능사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차가 짧아질수록 작가는 더 자극적인 소재로 인물의 성격을 소개라고 사건을 전개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교활하고 나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30분동안 크고작은 사건을 보여주는 것 보다 단 10분이더라도 파격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범죄도시2>에서 악당이 얼마나 악랄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신체훼손을 비롯한 표현이 포함된 오프닝 5분과 "너 지금 납치된거야"라는 대사 한마디로 끝내듯이 말이죠. 그러나 정통사극은 실제역사를 다루고 있고 등장하는 인물도 실존인물이라는 창작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묘사는 "마통사고"급의 논란을 낳을 소지가 있습니다. 이전의 긴 호흡의 사극이었다면 분명 호족문제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 달랐을 것입니다. 호족도 저정도로 공격적인 태도를 가진 프리메이슨처럼 묘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방제도 문제에 있어 강감찬의 반대에 서있는 김은부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고 강감찬과의 갈등으로 괴로운 현종의 내부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어렸을 때 지냈던 신혈사도 찾아가고  그 곳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졌겠죠. 정리하자면 회차가 길었다면 점차점차 벽돌을 쌓아가듯 갈등을 쌓아올리고 마침내 해소했겠지만 회차가 짧아지면 작가로서는 갈등을 커다란 바위를 올리듯 마냥 불쑥 들고왔다가 허겁지겁 깨뜨릴 수밖에는 없어집니다.

나름대로의 대안 - 사극의 챕터식 구성

방금 전까지 회차를 줄이면 안된다고 역설하더니 왜 갑자기 딴소리를 하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챕터식 구성을 한다는 것이 전체 회차를 줄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정통사극은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발생합니다. 이 제작비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캐스팅과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 회차는 40~50부작으로 하되 10~15부 씩 챕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 시대상을 묘사하는 드라마의 메인 플롯은 모든 회차가 끝날 때까지 유지하고 메인 플롯 사이사이의 서브플롯들은 각 챕터가 마무리 될 때마다 함께 마무리 되는 식입니다.
<고려거란전쟁>을 예로 든다면 메인 플롯은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며 각 챕터별로
챕터 1. 강조의 정변 - 각 캐릭터 소개와 강조의 정변 전개가 챕터의 중심플롯, 거란의 2차칩입 시작으로 챕터 마무리(일종의 클리프행거)
챕터 2. 거란의 2차 칩입과 양규의 활약 - 본격적인 전쟁의 전개와 양규의 활약이 중심플롯, 김훈, 최질의 난의 전조가 보이며 챕터 마무리
챕터 3. 현종의 성장과 강감찬의 활약 - 김훈, 최질의 난으로 시작하여 성장해나가는 현종의 서사가 초반부 중심플롯 이후 강감찬의 활약이 중심 플롯
이렇게 나뉘어지며 각 챕터가 1년에 1 챕터씩 방영되는 것이죠.


한 해동안 한 작품이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제한적이라면 그 제한적인 면에서 고퓸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챕터를 나누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방식은 작품성이 있다면 챕터가 이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외면받겠지만 오히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시청률이 저조한 작품의 경우, 구태여 조기종영의 압박을 줄 필요없이 중간에 프로젝트를 폐기시킬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있을 것입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32회차에 사용했던 제작비를 12~15회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규모있는 전투묘사가 가능할 것입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운 급전개가 아니라 각 챕터를 마일스톤 삼아 서사를 진행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방송사의 내부사정을 잘 모르는 일인이지만...)

정리하며

오늘은 사극제작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두 가지 요인을 알아보고 그 대안을 저 나름대로 이야기해봤습니다. 글을 적기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글로벌 OTT들의 제작하청업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 강하게 받았습니다. 마치 무협영화의 대성공으로 막대한 자본이 흘러넘치다가 이제는 자체제작 여건마저 잃어버린 홍콩처럼 말이죠. OTT의 투자라는 물이 낙수효과를 일으켜 조연급 배우들, 엑스트라, 기타 제작진들에게도 합당한 대가가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이 사극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를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극은 그동안 수많은 배우들과 제작진의 양성소이고 요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곳이 자본의 논리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큽니다. 부디 <고려거란전쟁>이 호평 속에 마무리되고 후속 정통사극의 이야기도 들려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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